부들댁 #어머니 #잘난 아들 # 어머니의 기억1 부들댁의 아픈 손가락(1) [여로(女路)] 부들댁은 택호이다. 택호는 집안 안주인들이 시집을 올 때 붙이는 별칭인데 통상적으로는 살던 동네의 이름을 붙였지만 부들댁의 택호 만큼은 예외였다. 부들이란 뜻은 '붙들다'란 뜻으로 아들이 귀한 집안에서 아들을 붙들어 달라는 의미로 붙여진 이름이었다. 부들댁의 삶은 하늘의 무지개처럼 빛나야 했건만 1941년생인 그는 일제의 압제를 거치고 얼마 지나지 않아 6.25가 터지는 와중에 제대로 먹지도, 공부하지도 못한 채움의 한을 평생 안고 살아가야 했다. 초등학교 3학년 중퇴가 최종 학력인 부들댁은 비로도(벨로드)공장 직공으로 일하다가 비교적 어린 나이인 20살에 세살 위의 성실하고 착한 안동 김씨 성을 가진 남편을 만나 먼지날리는 신작로 길섶 콩나물도가 박씨네 문간방에 세를 얻고 단란한 신혼을 이어갔다. 소달.. 2021. 2. 9.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