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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들댁의 아픈 손가락(6)[달콤한 여행]

by 信泉 2021. 2. 16.

부들댁의 병상 생활은 아픔을 기쁨으로 덮을 수 있을 정도로 모자간, 고부간의 가슴 터놓는 대화들이 병실 문틈으로 새어 나간다.

광율은 이 땅에서 허락받은 3개월 시한부 어머니의 삶 중에서 남은 두 달을 어떻게 보낼까 며칠을 고민하다가 담당교수의 허락을 얻어 어머니를 모시고 1주일 동안의 마지막 여행을 계획한다.

아내와 계획을 짜고 여행 일정과 준비물을 챙긴다. 동행하겠다고 고집 피우는 아내에게 양해를 구하고 어머니와 단 둘이서 마지막 여행을 떠날 마음에 며칠 잠을 설친다. 평생 공직 생활을 하면서 자신을 위해 휴가, 연가 제대로 사용해 본 적이 없는 광율은 어머니와의 달콤한 여행과 행복한 이별을 위해 이참에 공직생활을 마무리 하기로 하고 어머니 몰래 명예퇴직 신청을 해둔 상태였다.

공직을 떠나는 다른 이유가 또 하나 있는데 광율이 만의 비밀이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부에 유리한 판결을 해 주길 바라는 신호들을 여러 차례 받았지만 어느 정권을 막론하고 김광율 판사의 판결은 중심을 잃지 않았기 때문에 정권을 잡은 사람들에게는 강직하지만 불편한 인물로 분류할 수 밖에 없는 처지였다. 아무리 눈치없는 광율이건만 세상 돌아가는 상황을 모를리 없었다. 자신의 거취에 대해 늘 고민하던 차에 어머니의 일로 결단을 내리게 된 것이다.

여행 중 행여나 어머니가 불편해 할까봐 승용차 보다는 수시로 누울 수 있는 캠핑카를 빌리기로 했다. 마침 성수기가 아닌 탓에 렌트카 업체를 찾아 수십대의 캠핑카 중에서 최신형 장치들로 치장된 멋진 차를 골랐다.

어머니의 안락함을 최우선으로 생각한 선택이기에 하나 하나 꼼꼼하게 사용법을 배우고 의자를 뒤로 기울였다가 다시 세우기를 반복하며 익숙하게 작동을 해본다.

대형마트에 들러 식자재와 간식거리들을 가득 채운다. 가장 신경쓰는 것은 어머니의 식사를 위해 신선식품 코너와 건강식 먹거리 코너를 중점적으로 살핀다. 미리 메모해 온 쪽지를 안경 너머로 연신 살피며 난생 처음 해보는 장보기가 이렇게 행복할 줄이야 예전엔 미처 몰랐다.

마지막으로 생수를 차에 싣고 혹여나 빠트린 것이 없나 살피고 또 살핀다. 아차! 어머니를 위해 꼭 사야할 것이 있다. 다시 식품 코너로 달려간다. 튼실하고 미끈하게 생긴 계란 세 판을 들고 나온다. 광율이 생각하는 계란은 어릴적 어머니가 가장 싫어하는 음식이었었다. 어려운 형편에 단백질을 보충하는 것은 계란이 유일한 것이었지만 그마저도 넉넉히 먹이지 못하는 마음에 어머니는 아이들만 먹이고 먹어보라는 아들의 말에는 엄마는 계란을 못먹어 먹으면 온 몸에 두드러기가 난단다.” 광율은 고등학교에 다닐 때까지 우리 어머니는 계란 알레르기가 있어서 못 드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날 형제가 밥을 먹고 공부하러 방에 들어간 사이 아들이 먹다 만 계란찜을 숟가락으로 긁어 맛있게 드시는 모습을 우연히 보고 난 후 광율이의 머릿속엔 어머니에 대한 애틋한 연민의 정이 계란으로 가득 차 있었던것이다.

계란 세 판 90알 어머니께 계란프라이, 계란찜, 계란말이, 계란국, 계란을 엷게 묻혀 구운 두부 부침개 등 생각만 해도 효도할 것 같아 행복하다.

그리고 인터넷으로 미리 주문해 둔 고향의 음식도 챙겼다. 어머니와 평생을 함께하고 우리 가족의 원동력이 된 안동간고등어와 연붉은 색깔의 안동식혜 그리고 어릴적 신시장통 뾰족한 모퉁이길에 팔던 노미할매의 팥고물 두툼하게 묻힌 버버리찰떡, 특별히 어머니가 지난달 아들 먹으라고 보내주셨던 곤짠지와 고추 부각, 먹을 때마다 어머니의 정을 생각하며 애지중지하며 아껴 먹던 것들을 아낌없이 퍼왔다.

이제 준비는 얼추 된 듯 병원으로 가서 어머니를 모시고 신나는 여행을 떠날 생각에 광율은 동심으로 돌아간 듯 신이 난다.

한 달여 병원 생활로 수척해진 어머니의 모습에 안쓰럽지만 한편 어머니 먹고 싶은 것 맘껏 해드리고 얼굴을 활짝 펴게 해드려야겠다는 생각에 용기를 내본다. 간호사실에서 주의사항과 복용할 약을 받고 응급 상황에 대처할 요령 등을 숙지하고 어머니와 함께 떠난다.

캠핑카 안에서는 어머니가 좋아하는 찬송가가 잔잔하게 흘러나온다.

주와 같이 길가는 것 즐거운 일 아닌가~’

찬송가 소리에 어머니는 환한 미소로 흥얼거린다.

복잡한 신촌 거리를 벗어나 강변 북로를 타고 자유로 방향으로 달린다. 창가에 펼쳐진 풍경을 해설사처럼 어머니에게 설명하며 캠핑카 앞자리에 나란히 앉은 모자는 행복한 여행을 그려간다.

임진각에 도착한 모자는 다리 난간에 걸쳐진 각각의 사연을 담은 리본과 연인들이 걸어둔 사랑의 자물쇠들을 바라보며 이산의 아픔과 묘한 사랑의 여운을 느껴본다.

광율이 첫 여행 코스로 임진각을 잡은 것은 머잖아 어머니와의 이별을 염두에 둔 속 깊은 생각이었을 것이다.

어머니의 컨디션을 살핀 후 다시 떠난다. 식당, 침실, 화장실 등이 모두 갖춰진 캠핑카이니 한결 마음이 편하다. 오늘 저녁은 서해의 일몰을 감상하며 서해대교 행담도 휴게소에서 1박을 할 예정이다.

부지런히 네비양의 안내를 따라 달려 평택항 건너에 있는 예쁜 전경의 행담도에 도착했다. 우선 어머니와 상큼한 바다 내음을 맡아본다. 서해의 갯내음이 비릿한 향으로 다가온다. 주차장 한 켠 조용한 곳에 자리를 잡은 탓인지 주변에 차도 없고 조용하다. 편하게 기대어 TV를 볼 수 있게 해드리니 도리어 불편하다며 어머니는 아들의 밥을 손수 짓겠다고 한다. 이제 모자간에 사랑의 다툼이 시작될 순간이다. 이럴 줄 알고 광율은 병원을 나서기 전 어머니와 약조를 한 것이 있다. 이번 여행 일정에는 첫째, 가이드의 말에 전적으로 따를 것. 둘째, 먹는 것 입는 것 어느 것도 가이드가 해 주는대로 할 것. 셋째, 가이드가 모른다고 도움을 청할 때는 언제든지 도와줄 것. 넷째, 돈 이야기는 절대 하지 말 것

부들댁은 아들과의 약조를 한 상태였기에 이내 포기하고 만다.

첫날 저녁은 어머니의 손맛을 기억하여 아들이 끓이는 청국장 찌개이다. 멸치와 다시마로 육수를 내고 감자와 무를 썰어 넣은 후 된장 한 숟가락, 그리고 찐득한 청국장 한 숟가락 그리고 대파와 두부를 넣어 보글보글 끓인다. 어머니를 위한 것이니 일체의 인공 조미료를 넣을 수는 없는 법

한 숟가락 먼저 떠 어머니의 평가를 받는다. “~ 됐다.” 어머니의 잔잔한 미소와 차안 가득 퍼진 청국장 향내가 고향집 어머니의 품에 안긴 듯 포근하다.

바깥 화덕에 올려놓은 간고등어가 다 익었는지 구수한 냄새로 광율을 부른다. 참숯불에 구워진 간고등어는 노릇 노릇 먹기에 딱 좋다.

캠핑카 안에 차려진 모자의 밥상은 청국장에 간고등어 구이, 어머니의 곤짠지, 그리고 고추 부각 화령점정을 나타내는 계란말이까지 급한 나머지 미역국을 준비하지 못했지만 어머니를 향한 애틋한 사랑을 담은 만찬으로는 충분했다.

광율이 입을 뗀다. “어머니 제가 해 드리는 첫 식사네요 평생 받아먹기만 했는데 어머니를 위해 식사를 준비하게 된 것이 너무 행복해요 어머니 맛있게 드세요 많이 드시고 건강하셔야 돼요

행복한 첫 일몰 배경의 만찬이 눈물로 범벅이 된다. 어머니는 애써 울음을 참아 보지만 왠지 아들의 눈에 흐르는 눈물은 여름 장마처럼 그치질 않는다. 늘 대담하고 강하게 보이던 아들이 오늘따라 나약한 응석받이처럼 보인다.

하얀 티슈에 눈물을 닦은 모자는 행복한 얼굴로 다시 돌아와 식탁 위의 사랑을 나눈다. 아들이 얹어주는 간고등어 통통한 살점이 유난히 고소하다. 하얀 밥 위에 얹혀진 곤짠지도 유난히 윤기를 낸다.

바삭한 고추 부각도 계란말이도 입안이 헐어 맛을 느끼지 못했던 어머니에겐 꿀맛처럼 달콤하다.

모처럼 아들과의 만찬도 눈물로 시작하여 웃음으로 맺는다. 행복한 밥상을 어디에 비교하랴 주변의 풍경도 하나 둘 불이 꺼지고 조용해 진다.

천정에 달린 팬을 돌려 환기를 시키고 어머니의 잠자리를 편 후 TV를 켜니 인간극장 재방송이 화면을 가득 채운다. 따스한 침대 위 편안하게 누운 어머니의 깊게 패인 주름 사이로 인고의 세월이 흘러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