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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들댁의 아픈 손가락(5)[돌집과의 인연]

by 信泉 2021. 2. 15.

부들댁은 신안 주씨 웅천파의 후손이다. 어린 시절을 힘들게 보낸 탓인지 가문에 대해서는 본인의 성씨 이외에는 전혀 기억을 하지 못한다. 어쩌면 아픈 기억들을 지우기 위해 노력했는지도 모른다.

모처럼 큰아들과의 조용한 시간은 아픔을 잊고 새로운 세계를 만난 듯 병상의 아픔이 도리어 행복으로 다가온다. 아침 저녁 영상통화로 어머니를 걱정하는 타국에 있는 작은 아들의 애틋한 목소리도 비빔밥의 고명처럼 예쁘고 달콤하다.

지난밤 부들댁은 큰아들과 밤을 지새우며 고단했던 삶의 기억들을 정리했다. 어머니의 절절한 이야기들을 듣는 내내 아들은 눈물을 훔치며 간간이 수첩에 메모까지 하며 비련의 주인공 어머니의 삶을 그림을 그리듯 머릿속에 저장했다. 그런데 부들댁은 한 대목 이야기에서 멈칫 멈칫하며 차마 말을 잇지 못한다. 아들은 어머니의 특별한 사연이 있음을 직감하고 채근한다. “어머니 아픈 사연들 다 이야기하세요. 괜찮아요 이젠 다 지난 일인데요 뭐부들댁은 긴 한숨을 내쉰 뒤 용기를 내어 아들에게 눈물로 헐떡 헐떡대며 딸의 사연을 이야기 한다. 순간 아들은 망치로 두들겨 맞은 듯 어머니의 손을 잡고 소리내어 통곡한다. 지금껏 자식들이 상처받을까 숨겨왔던 사연 그래서 아직도 생선장사를 이어가는 안타까운 사연 등 잃어버린 딸에 대한 만남을 고대하는 어머니의 마음은 생명을 건 필사의 노력에 가까웠다.

아들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어머니의 아픔을 헤아리지 못했다는 자책감에 가슴이 미어질 것만 같다.

정신을 다잡은 아들은 어머니에게 어머니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제가 누나를 찾아볼께요 걱정하지 마세요 살아있다면 어떻게든 만날 수 있으니 희망을 가지세요아들의 한 마디에 부들댁은 천군만마를 얻은 듯 힘이 난다.

부들댁의 병세는 현대 의학으로 손 쓰기 조차 어려운 상황으로 진행하고 있다.

며칠 전 시술한 뇌동맥류는 꽈리 부분을 혈관을 통해 밀어 넣은 코일로 잘 막아 깔끔하게 치료를 했는데 가슴 아래와 옆구리 쪽을 눌러오는 통증은 점점 더 심해 온다. 그러나 이 정도의 통증이야 부들댁에게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부들댁의 옆을 지키는 아들의 듬직한 모습과 평생 대화했던 것 보다 더 많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행복함이 모든 통증을 잊게 해 준다. 이젠 머리도 희끗 희끗한 아들의 모습이 애처롭기까지 하다. 어릴 때 제대로 먹이지 못해 버짐 피었던 얼굴과 비쩍 말랐던 몸이 부들댁의 눈에는 TV속에 등장하는 주인공보다 더 균형 잡힌 모습으로 보인다. 부들댁은 관절염으로 구부러진 손가락을 가지런히 모아 기도한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나는 지금이 제일 행복합니다. 아픈 것 즈음이야 십자가에 달리셨던 예수님 생각하고 이길겁니다.” 부들댁은 아들에게 학비를 지원해 준 임사장의 조건없는 사랑에 감동하여 임사장이 다닌다는 안동시 화성동 돌집으로 지어진 안동교회를 찾아 제발로 임사장이 믿는 예수 나도 믿어보겠노라고 스스로 등록한 흔치 않은 이력의 소유자였다. 늦게 예수를 믿은 탓에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은 몸으로 봉사하는 것 밖에 없다는 생각으로 교회 행사 시에는 기념관 뒤편 주방에서 양팔 걷어 부치고 신나게 일하던 봉사의 주인공이었고 이웃 사람들에게 내가 믿는 예수 참 좋습니다. 같이 한 번 믿어봅시다.” 전도에 대한 특별한 교육을 받지 못한 부들댁은 자신의 삶의 모습으로 전도했다. 부들댁의 삶을 잘 아는 이웃들이 하나, 둘 교회를 찾게 되었고 부들댁에게 전도하는 즐거움은 나중 된 자가 먼저 된 자보다 낫다는 성경 말씀을 증명이라도 하듯 끊일 줄 몰랐다. 교회에서 처음으로 집사를 임명받을 때 부들댁으로서는 집 밖에서 받는 최초의 감투이었기에 부들댁의 이름이 적힌 종이를 찬장 유리문에 꼭 끼워 보관했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아침 저녁 회진하는 담당 교수는 비서인지 부하인지 모를 흰 가운 입은 한 무리를 이끌고 나타나 아픈 곳이 어딘지 몇 마디 물어보고는 미소 띤 얼굴로 마음 편안히 가지고 기도 많이 하세요라는 말만 던지고 나간다.

부들댁의 병세에 대해서는 모두 말을 아끼는 듯 묵묵부답이다. 부들댁은 답답하지만 강인한 어머니의 체신을 잃지 않고 꿋꿋하게 참고 견딘다.

아들과 며느리의 정성스런 간호와 간간이 들르는 큰 사돈 내외, 먼 곳에 사는 작은 사돈의 방문은 가까이 할 여유 조차 없었던 삶의 흔적들을 덮어둔 채 소중한 만남의 인연을 예쁜 추억으로 수놓아가고 있다. 1.4후퇴 때 혈혈단신 남으로 피난 온 큰아들네 바깥 사돈은 동대문 시장에서 인생의 가장 밑바닥부터 시작하여 지금은 옛 동대문 운동장 뒤편 패션 상가의 점포 수십개를 소유한 사업가이다. 수익의 상당 부분을 어려운 이웃을 돕는 일과 후학들을 키우는 장학사업에 사용한다고 하는데 특이한 것은 자신을 위한 일에는 근검절약이 몸에 베인 양반으로 주로 지하철과 버스를 타고 다니며 특별한 일이 있을 때만 15년이 훌쩍 넘어 박물관에나 있을 법한 낡은 승용차를 이용한다니 주변에선 인간문화재급 자린고비라고 혀를 내 두른다고 한다.

그런 큰 사돈이 부들댁을 방문 할 때면 병상의 난간을 잡고 간절하게 기도한 후 두툼한 봉투를 아낌없이 내놓고 간다. 하루는 딸과 사위를 부들댁 앞에 세우고서는 "김서방 너희 내외는 어머니 잘 모셔야 한다. 병원비는 내가 사돈께 빚을 갚는 마음으로 모두 부담할테니 걱정하지 말고 잘 모셔" 부들댁의 큰아들은 장인의 호탕한 한 마디에 괜시리 뒷 머리를 긁적이며 미안한 마음에 어머니의 얼굴을 바라본다. 부들댁은 몸둘 바를 모르지만 사돈 내외의 다정한 격려와 응원에 힘을 얻는다. 부들댁의 눈에 들어온 바깥 사돈의 오래신은 구두 뒷 굽 삐딱하게 닳은 모습도 나눔을 실천하는 노신사의 인격을 담은 삶의 궤적처럼 보였다. 손님이 떠난 병실 서쪽 창틀 칸막이 사이로 비집고 들어오는 저녁 노을이 십자가 불빛처럼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