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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제일고] 4월에 맞이한 눈물

by 信泉 2019. 4. 10.

엊그제 까지 교정엔 벚꽃이 만개 했었는데

밤새 심술궂은 하늘 덕에 온통 눈세상이 되었네

살다보면 누군들 궂은 날이 없겠냐마는

바람 분다고, 춥다고 움추릴 수 만은 없지 않은가?

바람은 세차도 옷매무새만 여미면 막을 수 있고

추운 날씨야 따스한 외투가 방패되어 지켜 주니 두려울게 없단 말이다.

인생사 어렵고 힘들었던 일들이 어디 한 두번 이었던가...

그런데 철딱서니 없는 정치꾼의 이야기가 연일 귓전을 맴돈다.

"늬들 아버지는 그때 뭐 하셨느냐?"는 질문 앞에

살아계셨다면 104세가 되셨을 굵게 주름진 아버지가 더 그리워진다.

어린 시절 아버지 무릎에 앉아 일제 강점기 시절 모진 고초 겪으셨던 말씀에 눈물 방울 흘렸었고

6.25 피난길 자식 새끼 살리려고 애간장을 녹였던 한 많은 세월을 들을 땐 아픈 가슴으로 답했었지

땅뙤기 하나 변변하게 없던 어려운 살림에 남의 땅 일구며 7남매 맏이로 살아온 고단했던 시간들

배불리 먹지는 못했으나 굶지 않고 살아온 세월이 감사해

젊은 시절 일찍이 예수 믿고 배우지 못한 한을 독학으로 풀어 간 아픔들

학교가 부족했던 시절 당신이 못배운 걸 보상이라도 받을 양

성경구락부라는 이름으로 교회 안에 학교를 열어 직접 가르쳤고

신성고등공민학교라는 이름으로 중학교를 운영하기도 했었지

비록 독학으로 한학과 신학문을 깨우친 분이었지만

이웃의 아픔들을 내 일 처럼 돌보며 우리 동네의 동장 일을 오랫동안 맡으셨었지

화려한 경력은 없는 평범한 시골 농부요,  시골 교회의 장로요, 한 때는 벨로드 공장을 경영한 경험도 있었지만 빨간 딱지가 온 집안을 장식하는 빚더미의 아픔까지 겪었었지

어린 시절 압류 당한 집에서 쫓겨나 창고 한 켠에 얼기설기 방을 꾸미고 온 방 가득한 곰팡네와 친구되어 살았던 눈물의 시간들도 지금의 나에겐 추억으로 남아 있지

힘있는 자에게 빌붙어 높은 자리 올라가지는 못했어도

능력이 모자라 일제의 앞잡이, 남로당의 앞잡이는 못했어도

자식으로서 아버지가 부끄럽지 않음은 

일평생 남 속이는 일, 폐가 되는 일 하지 않고 이웃을 위해 봉사하며 사신 분이었기 때문이리라

눈덮인 소백의 바람 사이로 찌푸린 하늘을 보니

오늘따라 온화한 모습으로 철없던 자식 걱정해 주시던 아버지가 더 그립다.

철부지 막내 아들이 교장으로 근무하는 학교, 자랑하며 구경시켜 드리고 싶은데

그토록 아끼던 손자 자랑스럽게 큰 모습과 이쁜 손부, 올망 졸망한 증손주들 보여드리고 싶은데...

화려하게 핀 꽃구경 한 번 못 보내드리 맛있는 음식 제대로 대접하지 못한 것이

이토록 가슴아리게 다가와 눈시울만 뜨거워지는구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