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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제일고]그 날이 있었기에

by 信泉 2018. 9. 16.

그 날이 있었기에 오늘이 행복하다.

70년대 후반 우리에겐 하늘의 도움으로 만 가능하다던 선망의 대상이

현역 복무 대신 방위 근무로 병역의 의무를 마치는 것이었다.

무척 게을렀던 나 역시 방위 복무를 엄청 원했었다.

농군의 자식인 탓에 줄을 댈 수도 없는 단순 희망 사항이었다.

그러나 행운은 나를 비켜간 듯 현역 복무로 결정되어 영주역에서 떠나는 입영열차를 타게 되었다.

논산훈련소를 거치고 대전의 국군통신학교 그것도 모자라 고난의 결정체로 소문난 제1공수특전여단으로 배속받아  유행가 가사속에서나 들었던 대전발 0시 50분 열차에 얹혀졌다.

서울 용산으로 가는 내내 육군본부, 정보사, 보안사, 군단사령부 등 일명 물 좋은 곳으로 배속받아 흥분을 가라 앉히지 못하는 동료들의 철딱서니 없는 재잘거림 곁에서 풀이 죽은 나는 그나마 생각이 깊은 몇몇 동료들의 위로를 받아야만 했다.

용산역으로 나온 특전사 요원들의 안내를 따라 종로 어딘가에 있는 식당에서 순대국밥을 먹었는데 입대전 서울에서의 대학 시절 그 맛있게 먹었던 순대국밥이 마치 고무를 씹는 듯 국물만 몇 숫가락 떠 넣은 채 그대로 남기고 마는 아픔을 경험하고 말았다.

특전사령부 교육대에 배치되어 온 몸을 개조하는 듯한 혹독한 공수교육 하루 종일 달리고 또 달리는 강행군 속에서 양쪽 다리는 퉁퉁 부어 올랐고 고통은 극에 달하기도 했으나 깡으로, 악으로 버티어 이겨낼 수 있었다. 그리고 이어진 특수전교육, 공수교육 보다 더 지독하다는 1공수 특별 교육 등 입대 후 1년에 가까운 고난의 훈련들은 나를 진정한 특전사 요원으로 거듭나게 만드는 좋은 기회였다. 

기억조차 하기 싫었던 그 기간 지독한 근성을 길러주는 인간 한계로의 도전은 내 삶을 바꾸어주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사막에서도 살아갈 수 있는 강인한 정신력, 눈밭이나 흙탕물 속에서도 생존할 수 있는 체력과 기술의 연마, 고막이 터질 듯 굉음을 울리는 비행기에서 한 줄 낙하산에 의지하여 떨어지는 산악점프 등  죽음의 문턱을 넘나들었던 연단의 순간들이 오늘의 삶을 지탱하게 해 준 자양분들이 되었다.

때론 현실속에서 삶의 무게가 짓누를 때도, 주변 환경들의 위협 속에서도 공수특전단 시절을 생각하면 새로운 용기와 자부심이 생기기 떄문이다.  오랫만에 해묵은 앨범 사이에서 펼쳐본 한 장의 사진 볼 때마다 새 힘을 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