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주제일고] 노란색 잠자리 연필이야기
어린 시절 모두가 무척 힘들게 살아가던 시절이 있었다.
남산 밑 친구의 집은 단칸방과 조그만 부엌이 딸린 허술한 난민촌 그곳을 우리는 구제실이라고 불렀다.
배급받은 강냉이 가루로 죽을 쑤어 온 식구가 하루 종일 허기를 메워야 하던 시절
종종 친구의 집을 보노라면 철부지 어린 마음에도 안타까움이 앞 섰었다.
나 역시 사업을 하시던 아버지의 실패로 인해 빨간 딱지가 붙은 멋진 집을 뒤로 하고
한 겨울 온 가족 8명이 얼기 설기 엮은 창고 임시 주택에서 여러 해를 살았었다.
겨울이면 흙벽돌 벽에서 흘러내리는 습기가 눈물처럼 부모님의 가슴을 적셨고
곰팡내 나는 퀴퀴함은 몇년을 두고 떠나지 않았다.
모두가 어려웠던 시절 다행히 보리밥이라도 제대로 먹을 수 있었기에 그 시절을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
그때 그 시절 초등학교 때 가난으로 찌들어 있던 우리 남매들에겐 변변한 학용품이 없었다.
침을 묻혀가며 꼬~옥 꼭 눌러 써야하는 몽당 연필 한 자루가 유일한 친구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늘 부러움의 대상이었던 한 친구는 노란색 잠자리(톰보)가 그려진 연필을 사용하고 있었다.
친구의 아버지가 일본에서 사온 노란 잠자리 연필은 침을 묻히지 않아도 힘을 들여 꼬~옥 꼭 눌러 쓰지 않아도 아주 잘 써졌다.
어린 마음에 그 친구가 쓰는 노란 잠자리 그림이 있는 연필이 얼마나 가지고 싶었던지...
이제는 책상 위 노란색 연필을 보면 옛 생각이 절로 난다.
모든 것이 풍족한 세상에서 우리 아이들은 무엇을 얻고 싶어 할까?
8월 9일 개학 한 이후 여름 내내 아침 등교와 더불어 에어컨을 팡팡 틀고 쉼 없이 시원함을 만끽한 시간들
집보다 학교가 더 좋다는 말을 자랑스레 부르짖던 아이들
복도에 떨어진 볼펜을 줍지도 않는 풍족함의 극치를 달리는 아이들
연필과 지우개는 흔해질대로 흔해져버린 세상
이들 앞에 절약이라는 교육을 할 때가 된 것 같다.
내가 아끼고 나누면 모두가 행복한 세상을 꿈꿀 수 있기 때문이다.
배고픔을 모르는 세대에게 절약을 가르치는 것은 무척 어려울 수 있다.
그러나 가르쳐야 한다.
나의 작은 실천이 이 땅을 변화시킬 수 있음을...